A Chairman Who Has No Regrets - Chapter 181
Only Noblemtl
후회 안 하는 회장님 181화 – 미국에서(2)
번쩍.
누가 나를 깨운 것은 아니지만 때가 되니 내 눈은 떠졌다. 창밖을 바라보니 아직 뉴욕의 아침은 밝아오지 않았다.
독일과 뉴욕의 시차는 6시간.
어제 초저녁에 잠이 쏟아지더라니.
슬쩍 초토화된 미니바를 보다 고개를 돌렸다. 그냥 시차 때문에 피곤했던 것이다 생각하며 나는 침대에서 엉덩이를 떼었다.
한 번에 바로 일어나는 게 중요하다. 더군다나 등 배기는 이불이 아니라 이렇게 포근한 거위털이나 오리털 침대라면 더욱더 빠르게.
기지개를 켜고 물을 마신다. 간단하게 양치만 한 뒤, 편안한 옷으로 입고는 헬스장으로 향했다.
쾅.
팡.
다양한 쇳소리와 거친 숨소리.
헤르찬 때문인지 덕분인지.
나도 여행 내내 헬스를 하다 보니 이제는 하나의 루틴이 되어버렸다.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서 쇠질을 못하리라 생각하니 오히려 아쉬움이 들 정도.
뭣보다 건강 관리야 나에게는 아주 중요한 부분이니 부러 찾아서 해야 할 판이었다.
“읏차.”
어제는 하체를 했으니 오늘은 상체를, 그것도 어깨를 시작하기로 했다. 너른 어깨야 말로 남자의 상징이니까.
아침부터 고급 호텔에서 쇠질 하는 동양인이 어색할까? 몇몇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지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저들에게는 인종이 꽤나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이런 상류층이 즐길 호텔에서는 더더욱. 미국이 현재 경기침체를 겪고 있으니 이 호텔에 머무는 사람들은 제법 상류층의 사람들 일 것이다. 그들이 가진 백인 우월주의는 말해야 입만 아프다.
“후아-”
헤르찬이 알려 준 코스를 마무리 하고는 유산소로 수영을 선택했다. 온도가 낮은 물에 들어가면 젖산이 어쩌구 하는 소리를 차근범에게 들었으니까 한 번 접목 시켜 보는 것이었다.
혹시라도 남아있는 어깨의 삼각근을 털기에도 괜찮은 방법일 것 같으니까.
운동을 끝내고 방으로 돌아오는 데 엘리베이터에서 김강민을 마주쳤다.
“아, 벌써 일어나셨습니까?”
“예.”
“와, 운동까지 하고 오신 모양이네요.”
“예, 루틴이라.”
그가 놀란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확실히… 다르시네요.”
많은 의미가 담긴 말을 그냥 흘렸다. 구태여 대화가 필요한 사이는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
어제 본 바에 의하면 눈치가 나쁘지 않은 사람 같았지만, 비즈니스는 꼭 눈치로만 하는 것은 아니니까. 물론 중요한 덕목 중 하나임에는 틀림없다.
“오늘은 총 세 개의 미팅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넉넉하네요.”
김강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법인을 설립하는 것, 여러 가지 법적인 절차와 세금 문제만 해결하면 그리 어려운 문제는 아니었다. 그러나 중요한 문제니 교차 검증은 필수.
최태웅의 지시인지 아니면 그가 생각하고 준비한 것인지 모르지만 나쁘지 않은 스케쥴이었다.
“첫 미팅은 넉넉하게 오전 10시로 잡았습니다.”
호텔방에 들어와 시계를 보니 이제 7시가 조금 넘어가고 있었다. 뉴욕에는 완전한 아침이 찾아오기도 했고.
“같이 조식하시죠?”
김강민이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겠습니다.”
뭔가 어제보다는 조금 더 풀려진 느낌이었다. 정확하게는 내게 가까워지려는 듯 보인다.
방에 들어가니 김강민은 조용히 문 안으로 한 걸음 들어와 나를 기다려준다.
“편하게 계시죠, 씻고 오겠습니다.”
“예.”
쏟아지는 물줄기에 집에서는 맡아보지 못한 향긋한 세제로 목욕을 시작했다. 맘 같아서는 근육의 피로를 조금 더 낮추고 싶지만 기다리는 이가 있으니 그럴 순 없었다.
또, 식사를 급하게 하는 것 역시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한끼, 한끼, 그 식사의 시간이 요즘 들어 참 중하게 느껴졌다. 정확하게는 조금 더 여유로워졌다고 하는 게 맞겠지.
“음?”
바깥으로 나오니 김강민이 인상을 찌푸리며 하우스키퍼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룸 보안에 문제 있는 거 아닙니까?”
“예? 절대 그럴리 없습니다. 고객님.”
“아니 그럼, 도대체 저 술은 누가 다 마셨다는 겁니까?”
잔뜩 당황한 하우스키퍼들.
“커험험.”
나는 가운을 걸치고는 크게 헛기침을 했다.
김강민이 날 바라본다.
“우리 주주님은 미성…”
“커험험험험.”
“… 청소 잘 부탁, 아니 체크아… 음.”
김강민이 내게 조심히 다가왔다.
“그, 주주님.”
“예, 과장님.”
“체크아웃… 하지 말까요?”
나는 저 멀리 김강민의 뒤편 미니바 부근을 바라보다 애써 고개를 돌렸다.
“아뇨, 하죠.”
“예, 알겠습니다.”
그러고는 뒤돌아서며 살풋 고개를 갸웃거리는 김강민. 뭔가 잘 모르겠다는 그런 느낌이었다.
옷을 갈아입고 조식장에 도착했다. 확실히 럭셔리 5성급에 어울리게, 조식 역시 주문식이었다.
“오, 아침부터 스테이크가 있네요.”
“예, 여기 송아지 스테이크가 유명합니다.”
“좋네요, 탄수화물 제한되어있는 식단으로 순서 상관없이 같이 주시죠.”
나의 능숙한 영어에 잠시 눈을 크게 떴던 김강민이 이내 나와 같은 것을 달라 주문한다.
“유학생이신가요?”
“아뇨, 어쩌다 보니.”
“볼수록 참 신기하신 분이네요, 저도 어디 가서 영어가 유창하다 칭찬을 듣는데, 저보다 훨씬 나은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더는 말을 붙이기 어려웠을까, 잠시 입술을 달싹이던 그는 입을 닫았다. 나 역시 따로 얘기할 것은 없기에 타임즈에 집중하며 음식을 기다렸다.
곧 서빙된 메뉴들.
순서에 상관없이 빠르게를 요청했더니 디저트를 뺀 모든 메뉴가 나왔다. 모두가 저마다의 겸양을 부리며 포크와 나이프를 유려하게 움직여 애기 손바닥보다 작은 스테이크나 오믈렛을 썰고 있었다.
“흠.”
“뭐가 마음에 안 드십니까?”
“주문은 한 번뿐인가요? 제가 대식가라.”
조용히 손을 들어 올린 김강민.
곧 다가온 서버가 활짝 웃으며 말한다.
“언제든 추가하실 수 있습니다.”
나는 고기의 사이즈를 보고는 말했다.
“5인분 됩니까? 메인 메뉴만.”
잠시 놀란 눈을 했던 서버가 이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요, 문제없습니다.”
“그럼 준비해주시죠.”
“네.”
정중히 물러간 서버.
그제야 나는 포크를 들어 올렸다. 나이프 따위는 필요가 없는 사이즈다. 조금 겸양을 부리자면 두 입이요, 무리 할 필요 없이 한입에 넣을 수 있을 것 같은 크기.
우물우물 고기를 씹는데 여기저기 우리 테이블에 보내는 시선이 따갑다.
시선을 돌려 한 금발의 신사와 눈을 마주쳤다. 그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내 눈을 피했다. 마치 벌레라도 본 듯한 얼굴이었다.
“효율이 별로네요.”
“아, 하하.”
김강민도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모르지 않는지 약간은 붉어진 얼굴로 멋쩍게 웃는다.
되도 않는 매너는 무슨.
한 입짜리 고기를 여러입에 잘라 먹는 것은 너무나 비효율적인 일이었다. 조식장에 오기전, 식사시간을 즐길 줄 알게 되었다고 했지만 어디까지나 맛있게 먹는 시간 자체를 즐기는 거지 겉치례를 즐기는 건 아니었다.
“음식 준비해드리겠습니다.”
주방장이 센스가 있는지 아니면 서버가 센스가 있는지, 조금 커다란 접시에 5덩이의 고기가 올라가 있었다.
“풉.”
“큭.”
“휴-”
비웃음과 한심함을 내비치는 숨소리가 들으라는 듯 내 귀를 때린다.
“저것들이.”
김강민은 새빨개진 얼굴을 하고는 속으로 욕을 삼키는 듯한 표정을 보였다.
“신경쓰지 마세요.”
“으음… 저 사람들은 노골적으로 동양인이나 흑인을 무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 식당 내부에 백인이 아닌 사람은 나와 그가 유일했다.
아마 김강민은 전 삶의 나와 비슷하게 인종차별적 대우에 많은 억울함과 불만이 쌓인 모양이다.
“가만히 있으면 또 무시하는 이상한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나 역시 공감했다.
“괜찮습니다.”
“음.”
진심이었다.
그들이 나를 무시하던 차별의 시각을 가지고 있던 그딴 건 내게 소용이 없었다. 무시하면 무시 할수록, 차별하면 차별할수록 난 더 좋았다.
나를 경계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내가 얻을 수 있는 이득은 커지니까. 이곳은 제법 상류층들이 있는 곳, 최대한 나를 무식하고, 천박하다 생각하는 게 내게는 이득이다.
곧, 그들은 내가 호구가 아니라.
그들의 초원에 나타난 사자라는 것을 알게 될 테니까.
“무는 개는 짖지 않죠.”
“예?”
“뭐,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드시죠.”
“아, 예.”
한 덩이의 고기가 더 입 안으로 들어갔다. 송아지 고기가 일품이라더니 확실히 부드럽기가 말도 못한다. 미국놈들은 보통 씹는 맛을 선호하는데 이건 그렇지가 않다.
“그런데 젊은 나이에 성공하셨네요, 부럽습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조금은 허탈한 얼굴로 말하는 그.
“운… 그렇군요.”
뭔가를 말하고 싶은지 입술을 달싹이던 그의 얼굴에는 억울함이 엿보였다. 언젠가의 내 얼굴도 저랬던 것 같은데 기억은 정확하지 않았다. 운이라는 게 때로는 참 뭣 같은 것이라는 걸 그는 깨닫고 있는 모양이다.
나보다 두 배는 더 살았을 그.
그러나 그보다 두 배 이상 많을 나의 재산.
미국이라는 자본주의의 땅, 자본주의의 총해의 땅에서 물질의 가치를 조금 더 중하게 깨닫고 있을 그가 억울함을 가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내가 미국땅을 처음 밟았을 때.
나는 정말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고 불쌍한 존재였으며 억울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위장약을 들이켜야 했으니까.
“투자 법인으로는 뭘 하실 계획이신가요?”
그의 눈에 언뜻 욕심이 비친다.
나쁘지 않았다.
나는 돈 욕심 있는 인간을 좋아했다. 그들은 본인들의 욕망만 내가 채워줄 수 있다면 언제든 충성을 다하는 사람들이었으니까.
“투자를 해야겠죠.”
“오- 좋은 정보라도 있으신 겁니까?”
한국의 투자 시장.
끽해야 상하한이 이 시절 5-6퍼센트 정도 될까. 그러나 미국 시장은 제한이 없었다. 문제가 있다면 거래정지 후 조정은 맞겠지만 어쨌든.
하루에도 희희비비가 엇갈리는 시장을 곁에서 지켜보고 있노라면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된 사람이 내 옆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라면.
인간은 미치는 것이다.
바로 맞은편 아파트와 내 아파트의 가격이 3배 차이라면.
라면, 라면, 라면.
그런 자본주의의 규모를 끊임없이 비교하다 보면 어느새 빠져나올 수 없는 늪에 머리 끝까지 잠겨서는 앞도 제대로 볼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예, 있습니다.”
“오오.”
그의 눈이 반짝였다.
주식시장에서 정보란 금보다 귀하기도 하면서 똥보다 가치가 없는 것이었다.
꿀꺽.
그가 음식이 없는 입으로 마른침을 삼켰다. 대단한 부자 도련님으로 보이는 내가 정보가 있다니 마음이 동하는 모양.
입술에 침을 바르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잇는 그.
“실례가 안 된다면 조금만 알려 주실 수 있을까요?”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어쩌면 그에게 보이는 첫 웃음일지도 모르겠다. 입이 마르는지 그는 계속 혀로 입술을 훔치고 있었다.
“맨입으로요?”
“아…”
잔뜩 아쉽다는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는 그. 욕심은 늘었지만 아직 세상에 때는 묻지 않은 희한한 사람이었다.
“요즘 미국 경제 어떤가요?”
뜬금없는 질문에 잠시 생각에 잠기는 그.
“프펙스의 판매량은 어떻습니까?”
“아, 그거라면 조금 증가했습니다. 미약하나마 증가 추세에 있고요.”
“그 부분을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예?”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해당 부서가 어디입니까?”
“영업부입니다.”
영업부,
다양한 부서가 있지만 출납장부만 적는 일을 하는 경우가 있기도 하고, 아니면 실제 영업에 필요한 마케팅 분야를 전문하는 경우도 있는, 지금 이 시절에는 이런저런 업무들이 짬뽕되어 있는 그런 부서였다.
“영업전략은 뭡니까?”
“음, 우수한 품질과 가격경쟁의 우위입니다.”
정확하다. 내가 알던 프펙스의 가치도 저기에서 나오고 있었으니까.
“가격경쟁의 우위, 그말은 곧 다른 신발들보다 싸다는 얘기겠네요?”
“예, 그렇습니다.”
“경제가 활황일 때, 모든 물건이 당연히 잘 팔리겠죠?”
“예, 그렇습니다.”
“그럼, 경제가 불황일 때는 어떨 것 같습니까?”
“안 팔립니다.”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난리가 난 불황이라면.
식료품 외에 다른 것들은 당연히 팔리지 않을 것이다.
“애매하다면 어떻습니까?”
“예?”
“활황은 아니고 불황은 맞는데, 엄청 심각한 불황은 아닌 것 같고. 그런 상태일 때는요?”
모르겠다는 듯 대답을 망설이는 김강민.
“저는 가성비를 생각할 것 같은데요.”
“가성비요?”
이 시절에는 잘 쓰지 않는 말이었던가.
“내가 쓰는 비용에 대한 가치를 먼저 생각할 것 같습니다. 조금은 질이 떨어지더라도 두배 이하의 저렴한 가격이라면 나는 그 물건을 사겠습니다.”
“아-”
그제야 내 말을 이해한 모양.
“그럼 현재 프펙스가 성장세인 것이…”
난 고개를 끄덕였다.
미국의 경제 상황이 애매하다는 뜻이었다. 물론 불황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못해 자명했다. 경상수지적자가 큰폭으로 증가하고 있으니까.
“으음.”
피식 웃은 나는 말을 이었다.
“그래서 저는, 미국이 망한다에 베팅할 겁니다.”
딸그락.
그가 들고 있던 포크와 나이프를 그대로 떨어뜨렸다.